1년 전 생일에 선물로 받았던 책이다. 당시 이모저모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제대로 정독을 못하고 포기했었다. 그 이후 다시 집어들기까지 오래 걸려서, 이제서야 완전하게 완독을 했다.
서울대 최인철 교수가 쓴 책인데, 제목 그대로 좋은 삶에 대한 책이다.
심리학 서적이라고도 할 수도 있고, 삶을 보는 시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을 주는 자기계발서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보다는 연구기록서에 가까운 책이었다.
책의 목적은 선명했다. 독자들이 '행복'과 '좋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을 바람직하게 조정함으로써 더 좋은 삶(기쁨과 의미가 충만한 삶)을 살게 해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쓴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실용서적처럼 느껴졌다. 삶에 대한 시각과 태도를 다루는 책에 실용서적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이상한 것 같지만, 방법론적 성격이 짙은 책이어서 그렇게 느껴졌다.
이 책은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행복의 본질이나 진정한 의미를 구체화/명확화하는데 굳이 힘을 쏟지 않는다. 그냥 행복과 관련된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며, 각 주제와 관련하여 사람들의 ① 행복에 대한 인식과 ② 행복을 느끼는 정도, 삶에 대한 만족도 - 를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한지&삶에 만족하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역으로 '행복한 삶,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구조를 보며 나는 이 책이 방법론적 성격이 짙다고 느꼈다.
구체적으로, 책이 '행복'과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다루며 사용한 논리전개는 대부분 이러한 구조였다 : "흔히 행복은 A한 개념으로 여겨지는데, 논리적으로 행복은 B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올바르다. 또한, 연구 결과를 보면 행복을 A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보다 B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더 자주 경험했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므로 행복을 A와 같이 인식해온 사람들은 다시 잘 생각해보고 행복이 B에 가까운 개념임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아마도 이 책은 행복해지고 싶은 의지, 더 나아가서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의지가 있으나 그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행복에 대한 오해(성공과 행복을 대립구도로 생각한다거나, 행복의 정의를 너무 엄격하게 갖고 있다거나 등등) 때문에 행복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좋은 삶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는 경우(우울함이 짙은 사람들 중에서는 정말로 이런 의지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다)는 책이 크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행복과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그 달성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에, '왜 꼭 행복해야만 하는가'에서부터 의문을 가질만한 심리상태(지나친 우울함, 허무주의 등)인 경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막연히 우울한 감정상태인 사람들에게는 당장 읽기보다는 미루어두기를 권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구성은 깔끔했다. 목차도 체계적으로 잘 짜여져 있었고 논리전개도 탄탄했다. 내용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행복에 대한 다양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어떻게 살 때 행복한 삶이 되는지를 다룬다. 2부에서는 행복의 개념을 단기적 차원에서 장기적 차원으로 확장하며, 삶에서의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즉, '행복한 기분'에서 '행복한 삶'으로 논의를 확장하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한다. 3부는 1~2부에 비해 짧은데, 덕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행복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과 함께 덕스러운 삶(=품격 있는 삶)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내용 자체는 크게 특별하지는 않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거나, 되어야 하는 나보다 되고 싶은 나를 추구하며 살아야 행복하다거나 하는 등 대부분이 교과서적인 주장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꽤 흥미로운 편인데, 그 이유는 다음 2가지다 : ① 막연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설문조사)을 통한 실증적 데이터를 근거삼아 주장을 펼친다는 점 ② 오늘날 교과서적인 주장들이 세상 곳곳에서 도전받고 조롱받는 이 상황에서 다시 한 번 교과서가 옳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낸 점이다. 교과서가 주장만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세한 근거와 설명을 제시한다. 물론, 뻔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행복한 삶이나 좋은 삶이라고 하는 것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는 소재기 때문에, 교과서 외부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참신한 이야기들도 많이 다룬다.
책의 주제에 대해서는 더 다룰 내용이 없다. 위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독자여러분 이렇게 살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고 알려주는 것이 책의 목적이자 주제다. 책의 재미는 디테일로부터 오는데, 전부 다루기에는 너무 방대하니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몇 가지 부분만 정리한다. 아마도 정리되는 내용들 사이의 유기성은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정리된 내용들을 보며 책의 방향성이나 분위기는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용 일부를 아래에 정리하며, 글을 마친다.
1.
사람들은 흔히 '행복'이라고 하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감정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행복이란 특정한 개별적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다양한 감정 모두를 지칭한다. 우리는 다양한 긍정 정서(신나는, 열정적인, 자랑스러운, 활기찬 등등)를 경험할 때 행복해진다. 이렇듯 행복한 감정 상태는 본질적으로 매우 다양하므로,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다 유연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2.
고통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없어야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행복감이 더 낮았다. 일부 행복 실천가들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긍정은 이런 측면에서 비판받을만 하다. 행복을 깊이있게 연구하는 학자 그 누구도 행복이 완벽한 고통의 부재상태라고 하지 않는다.
3.
진화적 관점에서는 행복을 '좋은 기분'으로만 이해하며, 인간의 행복도 여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자극들에 의해 유발되는 기분일 뿐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은 의미 창출 작업을 하는 동물이며, 생존과 번식 외적인 부분(자아실현 등)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좋은 기분'으로써의 행복을 넘어, 인간의 행복은 '좋은 삶'의 관점에서도 이해될 필요가 있다.
4.
의미로 충만한 삶이 좋은 삶이다. 단, 의미를 지나치게 무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명의식, 대의명분같은 무거운 것들만 의미가 아니다. 부모님께 전화하는 것, 화초에 물 주는 것 등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고 가벼운 의미들도 존재한다.
의미 있는 삶이란 일, 사랑, 영혼, 초월(자신 밖으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의 네 가지 영역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다. 의미 있는 삶은 의미를 경험해야 한다는 결심을 되풀이하며 강박적으로 의미를 추구할 때 경험되는 것이 아니다. 일, 사랑, 영혼, 초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묵묵하고 충실하게 일상에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의 끝자락에서 자연스레 경험되는 것이다.
5.
냉소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좋다. 냉소적 불신이 가득한 사람은 스스로 늘 기분이 좋지 않고, 우울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다. 또한 냉소적인 사람들에게는 협동의 기회가 잘 찾아오지 않는다. 냉철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유능하지 않을까? - 라고도 여겨지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많아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기에 퍼포먼스도 좋지 않다. 결과적으로 냉소적이면 삶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6.
가정(假定)이 아름다운 삶이 좋다. 인격이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적 완성도가 아니라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가정들의 정확성과 품격이 인격이다. 인격 수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을 점검하여 나쁜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근거가 없는 가정을 정확한 가정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가정에서 나온다. (이는 쉽게 말하면 가치관, 세상을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건강해야한다는 의미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7.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이 좋다. 삶의 어조를 부드럽게 낮추고,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게 즉 강경하지 않게 사는 것이 좋다. 삶의 복잡성을 겸허히 인식하고, 생각의 다양성을 쿨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삶이 좋다. 확신은 갖되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삶이 품격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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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이지만, 지나치게 우울한 사람들은 오히려 행복을 진화심리학적으로 바라보는 책을 접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런 류의 책 중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봤었는데, 그 책은 행복에 대해 대략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 "오늘날 온갖 매체에서 '행복'이 삶에서 엄청 중요하고 비중있는 요소인 것처럼 요란하게 다루는데, 행복은 그닥 대단한 개념이 아니다. 행복은 단지 유전자가 자신의 유지와 복제를 위하여 이용하는 수단이다. 유전자는 인간이 생존과 번식에 관련된 행위를 할 때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했다. 따라서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생존과 번식을 추구한다. 아무리 고차원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아도, 인간이 얻는 행복의 본질을 깊게 들여다보면 거기엔 언제나 생존과 번식을 향한 지향이 깔려있다. 이것이 행복의 본질이다. 행복은 오늘날 매체들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닥 숭고하고 대단한 가치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은 삶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행복하지 않다고 기 죽지 마라. 삶의 의미는 행복 외에도 많은 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더라도 살아갈 의미와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꽤나 염세적인 이야기지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행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하지 않아도 삶은 의미가 있다, 삶의 의미는 행복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라는 얘기만큼 위로가 되는 얘기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한 반박도 많다. 당장 위 글의 3번 항목도 진화심리학이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반박이다. 나는 아직 무엇이 답인지 모르겠지만,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이 이야기도 이렇게 주석으로 달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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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서은국 著), 내용 간단 요약]
1. 행복에 대한 책이 시중에 너무 많은데 죄다 뜬구름잡는 얘기들이다. 마음을 비우고 뭘 어쩌면 행복해진다는 등, 행복하기 위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등.
2. 그러다보니 뭔가 사회적으로 주객이 전도된 감이 없잖아 있다.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다.
3. 과학적 시각으로 행복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자면 다음과 같다 :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과가 생겼을 경우 느껴지는 감정이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생존'과 '번식'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도록 타고났으며, 해당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난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하게 만들도록 하려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행복'이 주어져야 하기에 유전적으로 그렇게 설계된 것이다.
4.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행복한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 역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 높은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 행복하다. (*사람의 성격은 유전이 결정하는 부분이 50% 이상이다) 이는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사람들(특히 이성)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Cf. 오래된 연인과의 데이트 후보다 낯선 이성과의 식사 후의 행복감이 훨씬 크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는 더 많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임을 의미한다.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과학적으로 볼 때.)
5. 물론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행복을 얻지만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권에 따라 행복도가 차이나는데,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서 싫은 사람이더라도 억지로 만나야 하는 사회(한국, 일본 등)의 행복도는 매우 낮았다. 반면 개인주의 문화가 강해서 본인이 원하는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있는 사회(미국, 유럽 등)의 행복도는 비교적 높았다.
결론 : 행복은 좋은 사람들(주로 이성)을 만나는 데서 온다. 그리고 이는 유전자(구체적으로 '외향성')가 끼치는 영향이 50% 이상이다.
(*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음)
Cf. 현대 심리학(주로 뇌과학에 기반)에서는 매슬로우 5단계 욕구이론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아실현의 욕구같은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성선택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동으로 본다. (즉, 베토벤이나 모짜르트가 명곡을 써낸 것, 피카소가 명화를 그려낸 것 등이 전부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들한테 인기있고 싶어서라고 해석한다는 의미. (실제로 피카소는 명작이 나오는 시기와 새 연인을 만나던 시기가 일치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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