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9. 10:02 리뷰/책 이야기
[구 서평]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16.02.18)
[서평]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著, 2005.09.13. 발간)
민주화 운동으로 민주화를 이룩해냈지만, 이후 후속조치의 미흡으로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모든 자원이 중앙집중화된 한국의 현실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부 : 현재 한국의 상황 및 문제점
2부 : 해방 후 ~ 군부독재 시절의 역사 (6월 민주항쟁 전)
3부 : 노태우 이후 시절의 역사 (6월 민주항쟁 후)
4부 : 위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탄생한 문제들에 대한 정리
1부부터 4부까지의 내용구성을 간단히 표현하면, ‘상황진단 및 문제제기 → 문제의 기원과 역사(민주화 전) → 문제의 기원과 역사(민주화 후) → 상황요약 및 문제정리’ 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 제시는 딱히 없었다. 개정판 후기에서 해결책이 제시되기는 하는데, ‘적극적 시민이 되자’는 상당히 이상적인 해결책을 내어놓기 때문에 사실상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사족이지만, ‘적극적 시민이 되자’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야 효과가 나는 해결책을 내어놓을 생각이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촉구하기 위해 보다 쉽게 읽히게끔 책을 써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책이 어려운 편이다.)
아래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책 자체가 상당히 깊이가 있다보니 본문 내용의 방대함이나 상세함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으나, 중요한 내용 위주로 최대한 깔끔히 요약해뒀다.
참고로 요약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내 의견이 아니며, 오로지 저자의 주장과 설명을 옮긴 것에 불과함을 밝혀둔다.
[1부]
① 1980년대에 국민들의 거대한 열망으로 독재를 몰아내는 일은 성공했으나, 이후 후속조치가 미흡하여 한국에서 참된 의미에서의 민주화는 실패했다. (어떻게 미흡했는지, 왜 실패했다고 판단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후술)
②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와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문제들은 다음 4가지라고 볼 수 있다.
(1) 전 영역 양극화 심화, (2) 정치참여 저조, (3) 보수독점 정당체제, (4) 비대한 언론
③ 깊게 봤을 때 한국 정치의 핵심적 대립은 ‘여VS야’가 아니라 ‘정치적 대표들VS비투표 유권자’다. 최다득표 3개 정당 지지율 합보다 비투표 유권자 수가 더 많은데, 이는 정치와 국민의 거리가 상당히 괴리되어있음을 의미한다.
* [4부]-④에서 다루겠지만, 저자는 비투표 유권자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층이 아니라 기존 정당의 바운더리에 포함되지 않는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여당과 야당은 겉으로는 대립하는 척 해도 결국에는 비슷한 정치노선을 갖고 있고, ‘비투표 유권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대표들’과 완전히 다른 정치지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정치판에 비투표 유권자들이 원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 대립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한국 정치에서 여당 야당보다 더 큰 정치적 대립은 바로 정치적 대표들과 비투표 유권자간의 갈등이라고 주장한다.
[2부]
① 다른 식민지 국가들과 다르게 한국은 해방 후 지도체계가 혼란스러웠다. 뚜렷한 리더가 없었고, 김구, 이승만, 여운형 등 근 6개 정도 세력이 각축전을 벌였다.
② 이와중에 냉전이 도래하고, 남북한 모두 체제 유지를 위해 강한 정부가 등장했다. 여기서 남한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갖추었으나, 정치논의 속에 공산주의는 포용하지 않고 축출했다.
③ 좌익 척결의 문화 속에서 정치논의의 범위는 매우 협소해졌다. 때문에 동일한 이념적 지평 위에서 자유당과 한국민주당의 보수독점 양당체제가 형성되었다.(자유당과 한민당 둘 다 보수계열이었다. 진보계열이라고 할만한 공산주의 등의 사상은 이미 축출되었으므로.)
* 자유당 : 이승만 창당, 현 새누리당의 전신.
* 한민당 : 김성수·송진우 등 창당.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이승만과 유사한 노선.
④ 무엇보다,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국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들여온 것이 아니라 냉전시대의 세트상품으로 들어온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내용이 텅 빈 채 들어온 민주주의는 그 형식을 제외하고는 상당부분 왜곡되어 버렸다.
Cf.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는 서구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결국은 ‘시민간 갈등’과 ‘민주정부 수립’ 중 무엇이 먼저였는지가 서구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차이인데, 서구의 경우 시민간의 갈등이 먼저 있었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따라서 서구의 민주주의는 대화 및 갈등해결을 지향하는 성격이 짙었다. 반면에 우리는 정부 수립이 민주주의보다 우선했다. 다양한 갈등을 허용하기보다는 친북 프레임으로 좌익적 논의를 죄다 몰아낸 후, 남아있는 협소한 범위 안에서만 갈등을 허용했다. 민주주의 체제 구축 과정에서도 시민간의 갈등 해결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보다 대통령의 권한 설정에만 집중했다.(이는 헌법의 변천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렇다보니 논의를 통한 갈등 해결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왜곡되고, 민주적 절차를 따른 의사결정방식 등의 형식만 남게 되었다.
* 물론 엄밀히는 정부 수립이 우선했다고 보기 어려우나, 임시 지도층 내부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원칙이나 노선이 없는 상태에서 광복이 이뤄진 것이므로 민주주의가 우선했다고 보기는 더 어렵다.
⑤ 박정희의 산업화는 비대해진 재벌, 관료적 권위주의 문화, 언론과 정부의 유착 등 나쁜 유산도 많이 남겼지만, 나라 경제의 성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
* 일정 규모 이상의 경제가 받춰주어야 시민의식이 성장하여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는 분석결과가 있다.
⑥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역은 특이하게도 학생들(4.19 혁명, 6월 민주항쟁 등)이기 때문에 성공 후에도 운동계층은 제도권 정치로 진입하지 못했다. 군부독재를 몰아내는 일까지는 해냈지만, 결국 그 이후의 빈자리를 재구축하는 일은 또다른 정치 엘리트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에도 사실상 큰 변화는 없었다. 제도권 야당과 운동권의 분리라는 이 부분이 민주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3부]
① 민주화 이후, 노태우 이후, 문민정부에 와서 엘리트 독점 구조가 조금은 깨졌다. 새로운 세력이 정치 엘리트(지도층)이 되고, 군사시절의 행정관료 엘리트들은 관료의 자리에 남았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정치 엘리트들이 국정운영에 미숙하고 무능했기에, 행정관료 엘리트들이 계속 실권층에 머무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국가는 약해졌다.
② 게다가 야당은 재벌개혁, 노동개혁, 사회개혁, 국가개혁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이념공세를 피하기 위해 보수적 정책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③ 군사시절에 커진 재벌과 언론은 통제권 넘어서까지 성장했다. 언론은 거의 준사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앉게 되었다.
④ 해방 이후부터 산업화를 거치면서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다양한 자원이 특정 계층으로 집중화 된 것도 큰 문제였는데, 민주정부는 재분배를 해내지 못했고 결국 양극화는 되려 더 심해졌다. 엘리트간의 선거경쟁에서 국민은 여전히 승리의 결과를 배분받지 못했다.
⑤ 김영삼 정권은 군부를 정치로부터 내보내 병영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한계였다. 집중화·양극화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나 기득권의 정치독점 등 본질적인 문제는 손대지 못했다.
⑥ 김대중 정권 시절은 기회였다. 성장과 세계 수출시장 진입에 초점을 맞춘 친재벌적 ‘세계화’의 개념이 IMF 사건을 기점으로 투명한 기업공개를 요구하는 반재벌적 ‘세계화’의 개념으로 변화하는 등 개혁에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힘있는 개혁적 정치기반이 없었고, 권위주의 시기의 관료들의 힘이 강하여 추진력을 얻기 어려웠다. 게다가 김대중 정권이 노력도 많이 안 해서, 결국 이 때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4부]
① 그래서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위기다. 절차적 민주주의만 갖추어졌을 뿐, 경제·정치적 민주주의는 되려 역행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환멸도 짙다.
② 군부 권위주의 정권은 그나마 사회불만의 폭발이 두려워 종종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도 행했으나, 절차적 민주주의 수립 이후의 새 기득권 엘리트층은 오히려 군부보다도 사회불만에 덜 예민하다.
③ 반공 보수 이념의 긴 역사로 인해 한국 정치는 사회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균열을 거의 담아내지 못했다. 군부 시절에는 이념갈등, 5공 이후부터는 지역갈등만이 정치권에서의 유일한 대립구도였다. (만약 보다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대립이나 갈등이 허용되었다면, 지역갈등은 자연히 사라지고 그보다 훨씬 생산적인 갈등들이 있었을 것이다.)
④ 한국의 양당은 모두 보수측에 자리하여, 좌익적인 성향의 수많은 유권자들은 투표에 불참했다. 그러나 이들이 완전한 체념층은 아니다.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을듯한 누군가가 등장할 때 이들은 드라마틱하게 움직였다. ‘노무현 현상’이나 ‘정몽준 현상’이 그 사례다.
요약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책에 대한 의견 1>
내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한국에서 정당과 민중이 단절된 이야기다. ([2부]-④ 밑의 “Cf.” 내용)
요약문에서 다룬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면, 서구는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했으나 우리나라의 일반 시민들은 정치로부터 괴리됐다는 것이다. 또한, 서구에서는 서로 비슷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정당이 되고 시민단체가 되어 정치과정 속에서 각자 자신들 계층을 대변했으나,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시민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간의 권력다툼에서 만들어지거나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일반 시민들과 괴리됐다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사회에 뿌리내린 정당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저 내용이 인상깊게 와닿았다. 비록 성공적인 결과로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현상이 있고 안철수 현상이 있었듯이, 언젠가 진정 사회에 뿌리내린 정당, 위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닌 아래로부터 솟아난 정당과 정치인이 등장한다면, 기성 정치에 체념한 비투표 유권자층이 움직이고 우리나라가 보다 민주적인 나라로 나아갈 기회가 다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민중과 가까워지는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
책 내용은 알찼던 것 같다.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 같은 내용의 반복이 불필요하게 많다는 점, 김대중 정권에 대한 이야기(시도했던 정책이 무엇이었는지, 왜 노력을 많이 안 한 정부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가 세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꽤나 비관적으로 분석한다는 점,(나는 개인적으로 정치 퇴행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이승만부터 전두환 사이의 시기보다는 현재가 보다 많은 이야기를 정치권에서 다룰 수 있는 것 같다.) 좌익의 색채가 조금 짙다는 점(언론의 힘은 어느정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재벌이 국가 통제 밖에 있다는 등의 내용은 좀 오바같았다.) 등 단점들도 상당히 많은 책이었지만, 러프하게 읽는 것 만으로도 많은 지식을 얻고 또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책에 대한 의견 2> (2021.01.02. / 추가)
서평을 썼던 시기로부터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정치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사유로 탄핵을 당했고,(2016.12.) 새로운 대통령으로 문재인이 선출되었으며, (2017.05.)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300석 중 180석을 차지했다.(2020.04.) 주류 정치집단의 교체는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쳤고, 나 역시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5년의 시간동안 여러 일을 겪다보니 필연적으로 위 서평을 썼을 때와 사람이 많이 달라졌는데, 그렇다보니 위 서평을 썼을 때는 못 했던 생각이 들기도 했고, 했었던 생각 중 이제는 생각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생각이 달라진 부분은 추후 유사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의 서평에서 다루기로 하고, 못 했던 생각에 대해서만 간단히 적어놓는다.
5년 전 서평을 쓸 때는 느끼지 못했다가 이번에 요약을 타이핑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든 생각인데, “좌익적 색채의 논의는 모두 배제되었다”는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정권 교체 후에 우리 사회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토지공개념, 다주택 규제 등 평등의 가치에 큰 비중을 둔 논의들, 즉 좌익적 색채의 논의라고 할 수 있을법한 논의들이 많이 생겨났다. 해당 논의들이 압제를 받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책의 발간년도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는데, 내가 봤던 책은 2판(개정판)으로 2005년에 발간한 판본이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좌익적 색채의 논의들은 압제를 많이 받았구나’ 싶었다. 오늘날은 해당 논의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 축출되어 제대로 다뤄지지 못해서인지, 오늘날에는 상당히 활발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 변화를 보며, 시대가 변한 만큼 최근의 정치상황까지 담아낸 책을 추가적으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2021.01.02.(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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