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주홍글자 (너다니엘 호손, 김지원·한혜경 역)

 

 

 

「주홍글자」는 1850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책으로,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간통의 죄로 낙인찍혀 살아가는 여자가 사람들의 시선에 무너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다가 마침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낙인의 굴레를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간통의 죄를 짓고 그 사실을 은폐하던 목사가 자신의 죄를 자백한 후에야 편안함을 얻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내용 안에서, 일반적인 고전소설답게 다양한 방향의 해석을 갖고 있습니다.

 

 

1. 배경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만 할게요. 주홍글자의 작중 배경은 1600년대 초, 영국의 ‘청교도’들이 막 이주해오기 시작한 뉴잉글랜드(지금의 미국)의 한 마을입니다. 청교도들의 뉴잉글랜드 이주에 대해서 조금 얘기할 필요가 있겠는데, 역사적으로는 많이 중요하고 복잡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이 글은 책에 대한 글인 만큼 최대한 압축해서 설명할게요.

 

1500년 중반, 로마 가톨릭이 종교적 명분을 앞세워 정치 간섭을 하곤 했던 게 불편했던 영국은 정치적 독립을 위해 ‘성공회’라는 영국 가톨릭을 만듭니다. 하지만 종교적 개혁보다는 정치적 독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었기에, 성공회의 교리 자체는 로마 가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는 정치친화적인 행태도 보이곤 했죠. 이에 대해 종교가 정치에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느니, 종교는 세속에 때가 타서는 안된다느니 하고 반발하며 개혁적 차원에서 성공회와 길을 달리한 기독교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청교도입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라고 불리죠. 하여간, 영국 정부 입장에서도 성공회 입장에서도 좋게 보일 리 없는 그들은 영국 내에서 탄압을 받다가, 결국 1600년대 초에 탄압을 피해 뉴잉글랜드로 이주해 갑니다.

 

탄생 과정이 그렇다보니, 청교도들은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고 윤리를 중시하는 등 도덕적으로 굉장히 엄격하고 보수적이에요. 주홍글자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 마을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 내용

 

이야기의 주인공은 ‘헤스터 프린’이라는 여자와 ‘아서 딤즈데일’이라는 남자 목사 두 사람인데, 이들은 둘 모두 청교도 이주 시기에 영국에서 뉴잉글랜드로 이주해온 사람들입니다.

 

헤스터 프린의 남편은 그녀를 먼저 뉴잉글랜드로 이주시킨 후, 2년간 연락이 두절되어 생사도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그 지역에서 가장 추앙받는 청교도 목사인 아서 딤즈데일과 헤스터 프린은 간음을 저지르고, 헤스터는 임신을 하게 되죠.

 

책의 서두는 헤스터 프린이 생후 3달 된 아이를 안고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임신으로 인해 간음 사실을 숨길 수 없었던 헤스터는, 지역 공직자들로의 논의 끝에 평생 가슴에 ‘A’ 라는 주홍색 글자를 새기고 살도록 처분을 당합니다. 세상 모두에게 자신이 간음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손가락질 받고 부끄러워하며 살아가라는 의미로요.

 

한편 헤스터 프린이 끝끝내 간음의 상대를 밝히지 않았기에, 아서 딤즈데일은 여전히 명망있는 목사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간음에 대한 극심한 죄책감과, 사람들 앞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경멸로 괴로워하며 하루하루 병들어갑니다. 심리적 고통의 정도가 심해 몸 건강이 나빠지는 수준까지 이르죠.

 

마침 그 때 ‘로저 칠링워스’라는 노인이 영국에서 그 마을로 이주해오는데, 이 노인은 바로 헤스터 프린의 남편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체를 숨기고 행동하며 헤스터와 간음을 저지른 남자를 찾아다니다가, 딤즈데일 목사가 범인이라는 것 까지 알게 되어요. 그리고는 그의 주치의가 되어 가까이서 그의 심리적 고통 증폭을 조장함으로써 복수를 행합니다.

 

인물 구도는 이렇게 고정되어 있고, 구도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내용도 차분히 진행됩니다. 헤스터 프린은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도 조용하게 삽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도 하며 지내서, 사람들은 어느새 그녀의 가슴에 달린 글자 ‘A’를 간음(Adultery)이 아니라 천사(Angel)로 간주하기까지 하죠. 한편, 아서 딤즈데일은 초지일관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갑니다. 로저 칠링워스는 그 옆에서 그가 더 고통스러워 하도록 교묘하게 괴롭히고요. 결말 직전까지도 이 상황은 지속됩니다.

 

결말에서야 상황 변화가 좀 일어나는데, 끊임없이 지속되어오던 심적 고통이 너무나 괴로웠던 아서 딤즈데일은 결국 사람들 앞에서 진실을 자백합니다. 헤스터 프린과 함께 몰래 해외로 떠나기로 했다가, 결국 그러지 못하고 시내에서 마주친 그녀와 함께 마을 어디에서나 보이는 처형대 위로 올라간 뒤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백을 하죠. 그러고 그대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가 죽은 후, 로저 칠링워스는 삶의 목적을 잃고 피폐해지고, 헤스터는 딸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소설은 그로부터 수 년 후 헤스터 프린이 돌아와서 스스로 다시 가슴에 주홍글자 ‘A’를 달고 살다가, 죽어서 아서 딤즈데일 목사의 옆에 묻히는 데에서 끝납니다. 둘 모두의 묘비명에 ‘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음을 보여주며 여운을 남겨요.

 

 

3. 해석

 

책의 메시지로 가장 간단하게는 ‘잘못을 밝히고 반성하고 책임져라.’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진실을 밝혔던 헤스터 프린은 괴로워하지 않고 살았고, 아서 딤즈데일은 괴로움 속에 살다가 진실을 밝힌 후에야 편해졌으니까요. 죽음을 맞이하긴 했지만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해석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교과서적이죠.

 

「주홍글자」는 대조적 구조가 작품 전반에 걸쳐 있는 소설인데요, 바로 ‘헤스터 프린’과 ‘아서 딤즈데일’이 그 대조의 양 끝에 있는 인물들입니다. ‘로저 칠링워스’는 책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비중은 크지 않아요. 하여간, 주홍글자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은 대체로 위에서 언급한 두 사람의 대조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대조되는 면들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볼게요.

 

헤스터 프린은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세간의 대우로 인한 괴로움은 느낄망정 죄의식은 느끼지 않죠. 반면에 아서 딤즈데일은 사람들로부터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이지만, 그 내면에는 죄책감이 가득해요. 또한, 헤스터는 결점이 있는 사람으로 출발해서 점점 나아지는 성장형 인물이지만, 딤즈데일은 소설의 출발점에서는 완벽한 목사였다가 점점 망가져가는 몰락형 인물입니다. 그리고 헤스터는 보통 사람이고 딤즈데일은 청교도에요.

이런 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대조적 특징들이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주홍글자의 주제로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하는 건 바로 그 지점에서에요.

 

먼저, 주홍글자가 ‘죄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해석이 있어요. ‘죄가 있고 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벌이 있고 죄가 있는 것이다. 죄는 인식할 때부터 비로소 죄가 된다.’가 그 구체적인 해석이에요. 실제로, 작중에서 헤스터 프린은 벌에 대해 생각하지 않죠. 그의 남편은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렸던 그녀를 달콤한 말로 꾀어내 결혼했고, 그녀를 외진 땅에 보내놓고는 2년이 넘도록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딤즈데일 목사를 사랑했죠.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죄의식이 없기에 보통의 힘만으로도 삶을 잘 버텨나갑니다. 반면에 아서 딤즈데일은 벌을 생각하고, 구원받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그렇기에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여기며 죄책감에 뭉개지며 고통스러워 하고요. 둘의 그러한 대조는, 죄책감은 어떠한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자신의 인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홍글자의 주제를 ‘도덕적 완벽주의 비판’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성장하는 헤스터 프린과 몰락하는 아서 딤즈데일을 보면, 특정 시점에서의 도덕적 완결성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죠. 뿐만 아니라 도덕적 완결성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헤스터에게 마을 사람들이 가한 가혹한 태도와 경멸적 시선도, 엄밀하게는 도덕적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이고요. 그런 지점에서, ‘도덕적 완벽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죠.

 

이 외에도 도덕적 완벽주의 비판과 비슷한 관점으로 ‘낙인의 폭력성’을 주제로 보는 견해도 있고,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작품이 쓰여질 당시의 청교도들을 비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보면 알겠지만,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고는 해도 방향은 전반적으로 비슷해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해석이 그래도 보편적인 해석들이라, 책을 잘 이해하는 데는 충분했을 겁니다. 다른 견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추천드리며, 이만 여기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2015.09.04

Posted by 인버스개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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