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著)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By Oliver Sacks)

 

 

신경장애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정신의학 서적이다. 자존감의 하락이나 우울감과 같은 일상의 심리적 고통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실제 뇌기능 장애가 소재다. 소재의 특성상 전문성이 짙어서 대중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책 뒷면의 소개를 보니 베스트셀러였다. 전문성이 짙게 묻어나는 책이라도 메시지에 깊이가 있고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면 대중성도 갖출 수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환자를 인간으로 바라보며 기록한 병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고장난 기계를 다루듯이, 의학적 관점으로만 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저자는 신경학과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책의 주제의식은 ‘환자를 단순한 치료대상이 아니라 역사를 가진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따뜻한 태도를 반영해서인지, 책 겉면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엄을 바탕으로 엮어낸, 임상의학의 걸작!”이라고 적혀 있는 띠지가 둘러져 있었다. 표지 뒷면에는 ‘인간과 영혼을 보는 새롭고 따뜻한 눈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적혀져 있었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직접 책의 주제의식을 알려주며 이야기를 시작한 덕분에 방향성을 잡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편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쭉 읽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뇌 장애의 유형을 4가지로 분류하여 각 항목마다 하나의 장을 구성했다. 각각의 장의 주제는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인데, 각 장마다 주제에 맞는 환자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사례에서는 환자의 삶과 환자의 병을 밀접하게 엮어서 서술한다. 병 자체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병으로 인해 바뀌게 된 삶의 방식, 병을 대하는 환자들의 태도 등을 보여준다.

 

1부 ‘상실’은 말소리상실, 시각상실, 행위상실, 기억상실 등 뇌기능 일부의 결손으로 기능 장애를 겪는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 제목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1부의 에피소드인데, 시각적 인지·판단 기능에 결손이 생긴 환자에 대한 이야기다. 환자는 장미꽃을 보고 ‘붉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초록색으로 된 기다란 것이 붙어 있는 물체’라고만 인지하고, 아내의 머리를 중절모로 착각하기도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추상화하여 인지하는 것이다.(고전 컴퓨터와 유사한 인지방식이다.) 다행히 후각과 청각은 정상기능을 해서, 환자는 해당 감각들에 의존하며 시각 결손을 보완하여 살아간다.

 

2부 ‘과잉’은 틱이나 투렛증후군과 같은 기능 과잉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신경학에서는 기능체계가 기능하냐/기능하지 않느냐로만 나누었기 때문에, 일단 기능을 하기만 하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과잉은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서야 질병으로서의 과잉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인간의 정신생활에 대한 제대로된 연구를 위해서는 과잉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첫 에피소드로 기능과잉으로 인한 에너지 고양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의 이야기를 해준다.(익살꾼 틱 레이, p.162~p.177) 이 환자는 진정제 투여로 증상이 완화는 되었으나, 그 반대급부로 기능과잉 상태에서와 같은 용기, 자신감, 영감, 에너지 등도 함께 잃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 환자에 대해 주중에 일을 할 때는 진정제를 투여하고 주말에는 투여하지 않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환자는 주중에는 진지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주말에는 야성적이고 창조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렇게 인공적인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음에도, 환자는 자신의 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3부 ‘이행’은 과거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회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인간은 관자엽과 변연계에 자극이 오면 과거로 이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회상은 신경학이나 의학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한다. 회상은 대개 당사자의 감정 및 의미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회상은 ‘의학적’이라기보단 심리적, 혹은 심령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기질적인 원인에 따라 일어난(=뇌 손상에 따라 일어난) 것이 분명한 회상의 사례들을 접했다고 한다. 3부는 그러한 증상을 겪은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3부에서는 머릿속에서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음악이 재생되는 환자의 이야기, PCP를 복용해 몽롱한 상태에서 애인을 살해하고 그 기억을 잃었다가 자전거 사고로 양측경막하혈종을 겪은 후 살해과정에 대한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 환자의 이야기 등이 나온다. 1부~2부에서와 유사하게 3부에서도 이 환자들의 병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뤄진다.

 

4부 ‘단순함의 세계’는 지능발달이 지체된 환자들의 이야기다. 4부에는 환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유독 잘 담겨있다. 저자는 단원의 시작에서 지적장애인들의 손상되지 않은 마음의 질을 언급하며, 그들의 천진난만함, 투명함, 완전함, 존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지적 장애인들의 특징을 ‘구체성’으로 정의한다. 지적 장애인들은 추상화와 일반화, 그리고 그에 기반한 분류를 어려워 하며, 있는 그대로를 단순하게 인식한다. 신경학자들은 이러한 ‘구체성’을 통일성이 결여된 퇴보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추상적 능력 즉 체계화·조직화 능력을 인간 정신의 훌륭함을 보여주는 근거로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구체성을 잃고 추상적 능력만이 남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사례를 다시 한 번 언급하며, 구체성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지적 장애아들이 구체성을 활용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음을 역설한다. 4부에서는 작가의 깨달음이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축약하고 정리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 판단되어 주제의식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하는 문장 일부를 아래에 옮긴다.

“내면적인 성장이 가능한 ‘정신적 결함’의 경우 감정적·이야기적·상징적 능력은 현저하게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키우거나 그림을 그리는 재능을 기를 수 있다. 반면에 범례적인 능력, 개념적인 능력 등 처음부터 분명히 뒤떨어지는 능력은 아무리 학습을 열심히 지속한다고 해도 키워지지 않으며 설령 발달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음악, 숫자, 시각 등 뛰어난 영역에서 그들은 진정한 창조적 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단지 기계적인 재주를 지니고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설령 특수하고 좁은 영역일지라도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에게 ‘창조적인 지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소중하게 키워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성이다.”

 

책은 이렇게 4부로 끝난다. 역자 후기에서는 책의 주제의식을 한 번 더 강조해준다. “병마의 도전을 받아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일상생활을 단념해야 하는 환자들은 그 나름대로 병마와 싸우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이길 수 없는 싸움이고 뇌의 기능은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까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집필 의도를 고려하여 내용 요약을 했기 때문에 위에서는 이야기 위주의 요약을 했지만, 실제 책 내용에는 의학적인 개념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각 증상이 뇌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을 때 발현되는 증상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오고, 병명과 투약용 진정제의 명칭 등 의학용어도 자주 나온다. 그래서 전공자 혹은 해당 방면에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 내용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독 후 가장 크게 남은 감상은 신경학, 정신의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유연해서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의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일반인인 나는, 의학은 기술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의사들도 사람이기에 의료계에 종사하며 인간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고, 생사가 오가는 환경에서 지내는 만큼 인간의 삶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함을 걸고 일을 하는 동안만큼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자의 삶에 대한 생각 등은 진단이나 처방 외의 영역에서 개인적으로만 하고, 환자를 대할 때는 일단 환자를 그저 생체기능을 하는 기계로 바라보고 냉철하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봐서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진단이나 처방, 수술 등에서 오차가 생기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을 함께 다루는 신경학·정신의학이라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나의 인식과는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1~3부에서도 그렇고, 4부에서는 특히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지적장애인들을 보며, 환자의 결함에만 너무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상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능력을 간과했음을 반성하고,(p.305) 그들이 아무리 기묘하고 이상하게 여겨질지라도 우리가 ‘병적’이라고 부를 권리가 없음을, 즉 그들의 세계를 존중해야 함을 강조한다.(p.345) 그래서 의료 분야도 아직까지도 정답이 딱 정해져있지 않은 부분이 많구나 –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책에 대한 감상은 이 정도다.

주제의식이 선명하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만한 장르의 책도 아니어서, 요약 성격이 짙은 서평이 된 것 같다. 여하튼,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이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덕분에 시야도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아서 좋다. 후에 이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다른 책들을 읽을 때 좋은 양분이 될 것 같다.

 

 

 

2020.07.21.

Posted by 인버스개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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