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9. 10:11 리뷰/책 이야기
[구 서평] 철학과 굴뚝청소부(2012.09.08)
[책]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그린비
「철학과 굴뚝청소부」입니다. 여기저기서 권장도서로 선정된 책이기도 하고, 그냥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꽤 유명한 책이죠. 개인적으로도 많이 좋아하는 책입니다. 내용도 알차고 설명도 친절하거든요.
철학과 굴뚝청소부에서는 데카르트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의 전반적인 흐름을 다루고 있습니다. 300년 이상의 역사를 책 한 권에 담아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일을 잘 해냈죠. 부연설명 부족이나 과한 압축 등의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런 부분은 이 책의 단점이라기보단 이런 류의 책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혹은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빈 부분을 스스로 채워넣지 못하는 독자(예를 들면 저라든가…….)가 문제인 것일 수도 있겠고요. 어쨌거나, 책 자체는 훌륭한 철학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크게 시기를 기준삼아 여섯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각각의 파트는 또 철학자들을 기준(드물게 당대의 배경이나 먼저 알아둬야 할 개념이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으로 장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대략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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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데카르트, 스피노자
└ 내용 : 근대철학의 형성
2부 : 로크, 흄
└ 내용 : 근대철학의 위기
3부 : 칸트, 피히테, 헤겔
└ 내용 : 근대철학의 재건
4부 : 맑스, 프로이트, 니체
└ 내용 : 근대철학의 붕괴 및 탈근대화
5부 : 훔볼트, 소쉬르, 비트겐 슈타인
└ 내용 : 탈근대 초기의 철학과 언어학
6부 : 레비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가타리
└ 내용 : 현대철학의 탈근대적 양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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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순서 구성도 체계적이고, 책 전체에 걸쳐 핵심적인 흐름을 놓친 적도 없고, 전달력도 좋은 책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추천한다는 거죠. 철학에 대해 알고 싶다거나, 가치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거나 한 사람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에 대한 리뷰도 해놨습니다. 아래의 '내용 리뷰 펼치기'를 클릭하면 펼쳐질 텐데요, 좀 깁니다. 그래서 배려 차원으로 중요한 부분은 글씨를 굵게 해놨습니다. 책 내용 중 개인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리뷰에서 별다른 언급 없이 생략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책의 전체적인 틀을 읽어내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 해석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좀 신경이 쓰이네요.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오해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리 양해 바랍니다.
<내용 리뷰>
1부에서는 중세의 신 중심적 사고방식이 서서히 약해지다가 데카르트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고, 이성(理性)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과학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이 다뤄집니다. 사람들이 존재의 기반을 신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에서 찾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죠. 여기가 바로 '주체'와 '진리'를 두 기둥으로 하는('주체'에서 출발하여 '진리'를 향해가는거죠) 근대철학의 시작점이랍니다.
2부에서는 앞서 제시된 과학주의의 방법론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로크와 흄입니다. 로크는 추론에 큰 비중을 둔 기존 과학주의의 방식을 비판하며, 경험과 관찰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경험주의자인거죠. 흄이라는 분은 임팩트가 좀 크신 분인데요, 기존 근대철학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아갔던 사람입니다. 우선 과학주의의 뿌리라고 해도 무방한 '인과관계'를 부정했고, '주체'라는 개념도 해체했죠. 인과관계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자면, 우리가 인과관계라고 생각하는 두 사건은 단지 시간적으로 인접한 두 사건에 불과하다는 게 흄의 주장입니다. 앞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뒤 사건이 일어난 거라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는 거죠. '주체의 해체' 부분은 사실 제가 제대로 이해를 못 한 것 같기도 한데, 아마 흄은 '주체(쉽게 말해 인간 개개인)'를 '(각자의)기억'으로 정의내리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이야 매 순간순간 새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니, 결국 주체는 확고하다는 전제가 무너진거죠. 이로써 근대철학은 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 읽을 때 되게 두근거렸어요.
3부에서는, 흄에 의해 붕괴 직전까지 몰린 근대철학이 칸트에 의해 되살아나고 다른 철학자들에 의해 다듬어지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칸트에 대한 칭송이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고, 칸트주의라든가 하는 말이 여전히 빈번히 사용되고 하는 걸 보면 아마 칸트의 재건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칸트는 별명도 '근대철학의 재건자'죠. 문제는, 제가 칸트의 주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혼자 읽고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감은 잡히는데, 설명은 영 못하겠네요. 죄송하지만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참고로, 책에서는 칸트의 업적을 '진리의 주관화, 주체의 객관화'로 요약하더군요.
4부에서는 근대철학에 대해 벌어진 비판의 폭격들을 다룹니다. 근대철학이라는 말이 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 여기선 그냥 합리주의, 이성주의, 과학주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추구, 어떤 것에 대한 확고한 정의(definition) 추구 - 등의 느낌으로 묶어서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맑스에 대해서부터 얘기를 해보자면, 우선 맑스는 어떤 대상에 대한 정의나 의미를 따질 때 '사회적 관계'를 중시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물리적 성질 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같은 것도 대상의 본질에 포함시킨 거죠. 예를 들어, 기존 근대철학에서 '성'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집'으로 그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만, 맑스의 철학에서 그것은 '권력의 상징'일 수도 있고, '무너뜨려야 할 대상'일 수도 있고, '문화유산'일 수도 있습니다. 그 중 어떤 의미가 될지를 결정하는 건 시대 속에서 그것이 가지게 된 사회적 관계가 되는거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성질로 정의를 내린다는 데 거부감이 들 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상징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보면 그것이 단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아마 맑스가 대상을 정의할 때 고려한 것도 바로 그런 실효성이 아닐까 합니다. 여하튼, 맑스는 이러한 논리와 방식으로 대상이나 진리가 고정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했고, '주체'에 대한 정의도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다시 내렸습니다. 요약하면, 고정불변에 집착하는 근대적 사고에서 흐름의 철학으로 뛰쳐나온거죠. 이제 프로이트 차례인데요,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사실 할 얘기가 많지 않습니다. 기존 근대철학의 붕괴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직업이 철학자는 아니어서 철학적 업적이 그닥 없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 프로이트는 심리학자였는데요, '무의식(사람의 정신 안에 있는, 전혀 의식되지 않은 채 판단하는 영역)'이란 걸 발견했죠. 이는 근대적 주체의 개념에 치명타를 날리는 발견이었습니다. 인간이 실제로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신(무의식)이 내리는 판단을 자신의 판단으로 착각한다거나 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발견이었기 때문이죠. 주체는 이제 더 이상 견고하고 중심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니체인데요, 니체는 근대철학의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생각하기보단 '왜 그것을 찾으려 하는가?'하고 반문을 하는거죠. 여기서 더 나아가, 니체는 진리를 찾으려는 태도가 진리 외의 다른 것은 배척하고 억누르려는 태도임을 지적하며 근대철학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독선적인 태도와 건방진 계몽주의 등을 비판했고, 근대적 의미에서의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며, 근대철학의 자리는 결국 폐허가 되어버렸죠.
5부부터는 그 폐허 위에 세워진 새로운 철학, 즉 현대철학에 대한 내용들을 다룹니다. 근대철학과 탈근대(현대)철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근대철학은 주체를 출발점으로 보고 초월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반면 탈근대 이후의 철학은 주체를 결과물로 보고 초월적인 진리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때문에 현대철학에서는 근대철학과 달리 항구적인 주체나 영원한 진리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습니다. 아예 다른 방향에서 새로 고민을 시작하죠. 그 과정에서 주목을 받게 된 영역이 바로 '언어학'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결국 언어 속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언어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인식체계과 사고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거라는 입장이 대세를 타게 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언어학에 대한 철학의 의존도도 높아지는데, 그 비중이 상당했는지 책에서도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에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더군요.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들이 당대 철학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읽는 데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으므로, 5부의 내용에 대해서는 현대철학이 그 방법론적 기반을 언어학에 두고 있다는 정도로만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6부에서 다루는 내용은 후기 현대철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6부에 나오는 철학자들에게서는 어떠한 방향적 통일성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세상의 복잡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던 시기여서 그쯤의 철학 또한 산발적인 양상을 띤 게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전반적인 흐름을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개중에 눈에 띄는 몇 가지 특징에 대해서만 말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시기의 철학은 상당히 진지하게 '평등'을 지향하고 실천해나갔다는 점이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의 경우에는 원주민이나 흑인의 문제까지 고민의 영역으로 끌어왔고,(이전에는 원주민이나 흑인들은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본주의(휴머니즘)'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푸코의 경우 적응자와 낙오자, 이성과 비이성 등을 나누는 여러 영역에 존재하는 경계선들을 제거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둘째로, 이 시기부터 철학계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는 근대적 분위기에서는 어려운 일이었겠죠. 여하튼,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들뢰즈의 '노마디즘(nomadism)'인데요, 노마디즘이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낡은 가치와 지배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하며 살자는 얘기죠. 참고로 들뢰즈가 우리에게 권한 이 노마디즘은 최근 철학의 흐름에서 꽤 주류적인 위치에 있다고 하네요.
자, 그럼 내용 리뷰는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다 쓰고 보니 글이 생각만큼 매끄럽지가 않아서 조금 아쉽네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양 근대 철학사에 정말로 관심이 있으신 분은 본 책을 사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리뷰는 오로지 개괄적인 흐름을 설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글인데다가, 전달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표현의 엄밀성을 포기하거나 특정 내용을 생략하거나 한 부분들도 꽤 있거든요. 하여간 여기까지 긴 글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2012.09.08.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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