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언저리에 읽었던 책인데, 최근에 세대갈등이 불거지는 것 같아 생각이 나서 다시 봤다.
책 제목은 20대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이 월 88만원이라는 계산에서 유래됐다.
대한민국 20대 청년층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그러한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세대간 불평등을 다룬 책이다.
당시 책을 봤던 이유는 하도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청년층 빈곤의 원인을 불평등한 세대간 자원배분으로 설명하는 것이 참신했는데, 역시나 그 부분에서 인기를 얻어 사람들의 논쟁을 유발했다.
책이 인기를 몰던 시기에 책 내용을 소재로 인터넷이나 신문 곳곳에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나왔던 기억이 난다.
책 내용대로 윗 세대가 능력도 없는 주제에 자원을 다 가져가서 청년층이 더 뛰어난데도 취업을 못하고 고생을 하고 있다는 주장, 책 내용이 잘못됐고 요즘 청년 세대가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해서 정작 현실적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거라는 반박, 이 책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을 앞세워 자본가 계층과 노동자 계층의 대립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는 분석 등 온갖 의견이 모두 튀어나왔었다.
책을 막 읽고 난 직후에는 그런 토론들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근 몇년 사이 세대간 갈등이 급속도로 심화되는 모습을 보다보니 다른 부분이 더 눈에 띄고 흥미롭게 여겨지기 시작하며 책에 대한 느낌도 살짝씩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냐면, 기분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88만원세대가 유행을 타고 난 이후부터 청년층에서 개인의 실패를 사회구조의 문제로 귀인하는 흐름이 짙어졌다고 느꼈다.
물론 특정 세대의 사회구성원이 유독 사회적 자원들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맞다.
그러나 나는, 책에서 다룬 사회구조적 문제가 사회적 논의로 다뤄지는 모습은 정작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치부하며 그 근거로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이 책은 문제제기와 대안제시 외에도 청년세대로 하여금 기성세대와 사회구조에 대한 반발심을 이끌어내기까지 했다는 것인데,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썼길래 그런 공분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 싶었다.
건강하지 않은 책이지 않았나 - 라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고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과연 내가 책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이 맞는지도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고, 마침 최근에 90년대생이 온다는 둥 세대에 관한 책들이 나오면서 세대간 소통 등이 또 한 번 조명받길래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일단 내용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책의 출판년도는 2007년이다.)
1.
경쟁은 세대 내에서만이 아니라 세대간에도 이뤄지는데, 세대간 경쟁은 기성세대가 너무 많이 가지고 가면 뒷 세대는 가질 것이 별로 없는 일방적인 게임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상황이다.
이전 세대는 성실하게 경제생활에만 임하면 적절한 기회와 다양한 패자부활전이 주어져 입체적 경제활동이 가능했으나, 청년 세대는 앞 세대와 달리 기회가 별로 없으며 세대 내에서 승자독식(Winner-Takes-All) 게임을 하여 일부만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
2.
그러므로 일단 20대를 욕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회구조와 세대간 갈등의 피해자다.
우리는 88만원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생활의 양식을 제시하거나, 청년층의 소득과 직업 안정성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기존의 노동과 사회를 재구성하여 이들의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
(저자는 ① 사교육 금지 등을 통한 대학서열 타파(양극화 완화, 사교육 자원 절약을 통한 경제성장), ② 정부 주도의 일자리 나누기(고용 증가, 임금 감소), ③ 각종 정책 내지는 지원을 통한 독과점화 완화 등의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책 본문에 나온다.)
다시 읽어봐도 메시지나 방향성은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고 느꼈다. 충분히 우리 사회가 고민해볼만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크게 아쉬운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근거 내지 참고자료에 대한 주석이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대안의 현실성·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주석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구조 내지는 경제문제에 대해 다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료들도 없었고 수치나 통계 등을 제시할 때도 출처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저런 부분을 매우 좋지 않게 본다.
아무리 상식선의 이야기나 납득 가능한 주장을 한다고 해도, 일단 출판물로 시중에 내보낼 것이라면 근거와 출처를 철저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다.
현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근거자료는 아무 것도 담지 않은 것은 주장과 내용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책에서 제시한 대안이 붕 떠있는 느낌이다보니 고민이 많이 담기지 않은 것 같아서 별로였다. (아마도 청년층의 반발심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선동적인 느낌이 나는 이유가 이런 부분 때문인 것 같다.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대안까지 깊게 고민해서 내어놨으면 우리 사회도 그 방향으로의 변화를 도모해볼 수 있었을텐데, 그런 것 없이 문제제기만 하고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으니까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만 남기는 꼴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읽는 입장에서 딱 시의성 정도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했던대로 건강하지 않은 책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주석이 철저하거나 대안이 구체적이거나 둘 중 하나만 있었어도 건강한 책으로 느꼈을텐데, 그렇지가 않아서 조금 아쉽다.
책에서 한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서나, 타당할 경우 앞으로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떤 대안을 세워야 할지는 나도 살면서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